빅버드의 기억/2009

090307 개막전 : 스테보

Seori 서리 2023. 12. 11. 00:04

2008시즌의 마지막 경기에서 그렇게 입덕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 다음 시즌부터 경기장에 뻔질나게 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다음 시즌에 나는 바로 입대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연하게) 유니폼과 머플러를 사고 심지어 N석 시즌권까지 지르는 등미친 짓, 다음 시즌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이 모든 시즌 전 준비 과정은 한 명의 개인 팬에는 설레는 과정이었지만, 당시 블루윙즈의 상황은 여러모로 녹록지 않았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인한 경기침체는 블루윙즈의 모기업인 삼성에도 큰 부담을 가져왔다. 결국 모기업의 씀씀이가 줄어든 블루윙즈는 당시 감독이었던 차범근이 두 개의 트로피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봉을 동결해야만 했고, 조원희와 이정수, 마토 네레틀랴크 등 우승 주역들을 잡지 못하고 모두 떠나 보내야했다. 그럼에도 울산에서 이상호, 신설된 아시안쿼터로는 중국 국가대표팀의 수비수 리웨이펑을 데려오면서 어떻게든 전력을 만회해보려고 노력했다. 특히 리웨이펑은 영입 당시에는 도대체 왜 중국 선수를 데려오느냐와 같은 평가를 받았지만, 나중에는 리웨이펑을 위한 개인 콜(리웨이펑 짜요)까지 생길 정도로 평가가 급상승했다.

 

K리그에는 시즌 개막을 알리는 개념의 슈퍼컵이 없기 때문에 리그 우승팀은 관례적으로 FA컵 우승팀과 개막전을 치른다. 2008시즌 FA컵의 우승팀은 포항이었으므로 당연히 블루윙즈의 개막전 상대는 포항이었다. 경기 시간에 딱 맞춰 들어갔는데, 아직 날은 조금 쌀쌀했지만 해가 비추면서 종이 꽃가루가 흩날렸다. 아름다웠던 경기장 입장 때의 장면과 달리, 시즌 전 우려했던대로 블루윙즈의 경기력은 신통치 않았다. 포항이 전반에 한 명 퇴장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3-2로 패배했기 때문이다. 종료 직전의 추격골이 터졌기에 망정이지, 전반에 퇴장당한 팀을 상대로 3-1까지 끌려갔다는건 여러모로 험난한 시즌이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수원 서포터들을 향해 화살 세러머니를 날리는 스테보 (출처 : KBS 뉴스 홈페이지 news.kbs.co.kr)

 

사실 이날 경기력보다도 더 기억에 남았던 것은 포항 스테보의 퇴장 장면이었다. 스테보는 전반 37분 포항에게 다시 리드를 안겨주는 골을 넣고 블루윙즈 서포터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는 도발 세러모니를 펼쳤는데, 심판이 이에 대해 경고를 주었던 것. 이미 그 전에 경고가 한 장 있었던 스테보는 세러모니를 펼치고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이랬던 스테보는 2011시즌 여름 이적 시장을 통해 블루윙즈에 합류했고, 이후 애정이 담긴 화살 세러모니를 서포터들 앞에서 보여주게 된다. 사람일 참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