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버드의 기억/2008

081205 수원 블루윙즈 챔피언결정전 1차전(2)

Seori 서리 2023. 6. 8. 15:52

기억이 너무 오래되어서, 그 날의 풍경이 다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표를 사줄테니 같이 가자고 얘기했던 그 선배를 따라서 얼레벌레 경기장에 들어갔는데, 경기 시작 시간이 거의 다 되어 들어갔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일단 앞쪽에 스컬크루가 자리를 하고 있었고(나중에야 그 그룹이 스컬크루인 것을 알았다.), 카드섹션 종이도 들었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축구 수도 수원'이라는 카드 섹션이었고, 내가 있었던 자리는 '구'와 '수' 어디쯤이었다.

 

처음으로 K리그 경기를 보러갔음에도 이상하리만치 이 날은 선수들에 대한 기억이 없다. 곽희주가 동점골을 넣는 장면은 어렴풋이 떠오르지만. 이 날 내 기억에 강렬히 남은 서포터들의 응원이었다. 가사를 잘 모르면서도 가열차게 따라 부를 수 밖에 없었던 패륜송, 넘실대던 반대편의 깃발 퍼포먼스, "나이스원나의 수원!"이라고 외치는 콜, 곽희주의 동점골에 이은 어깨동무와 오블라디까지...처음 본 사람이지만 경기장에서는 오로지 같은 팀을 응원한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이 날 처음 깨달았다.

 

경기가 끝나고 집에 와서 내가 몰랐던 응원가의 가사와 정확한 콜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니폼도 하나 사야한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블루포인트에 들어가서 유니폼을 샀었다. 그 당시에는 DIF에서 아디다스 유니폼과 모양이 똑같은 보급형 유니폼을 팔았는데, 내가 산 첫 블루윙즈 유니폼은 이 보급형 원정 유니폼이었다. 이어서 2차전에 가느냐 마느냐를 엄청 고민했다. 2차전 다음날이 중요한 과목 기말고사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래도 '성적을 챙겨야지'라는 생각에 2차전을 집관을 했다. 물론 집관을 결정했던 마음 한 켠에는 '설마 이번 리그 우승이 마지막이겠어?' 마지막이었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있었다. 분명 또 보러 갈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말 후회가 되는 결정이다.

 

2차전 당일에는 집관하면서 여러모로 마음을 졸였다. 정조국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나서는 '이러다가 우승 못하는거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했었다. 다행이도,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블루윙즈는 눈이 내리는 가운데 송종국의 결승골로 승리를 거두었고, K리그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풍경 속에서 우승컵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블루윙즈를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