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버드의 기억/2009

090311 나의 첫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Seori 서리 2023. 12. 11. 01:17

팀의 세번째 골을 넣고 세러머니를 펼치는 홍순학 (출처 : KBS 뉴스 홈페이지 news.kbs.co.kr)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는 여러 차례 개편이 되었는데, 유럽 챔피언스리그와 유사한 형태로 개편된 것이 바로 2009시즌부터였다. 그 이전까지는 리그 우승팀과 FA컵 우승팀만 출전했는데, 이때부터 출전 클럽 수를 확대하면서 유럽처럼 리그 순위를 따져 출전하는 것으로 개편되었다. 출전 상금도 올라간 것은 덤. 그 결과 2009시즌 K리그에서는 리그 우승팀인 수원 블루윙즈와 FA컵 우승팀 포항 스틸러스, 리그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한 FC서울북패와 울산 현대가 ACL에 출전하였다.

 

ACL을 처음 볼 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ACL을 보는 대다수 사람들의 시선과 내가 보는 시선이 많이 다르다고 느낀다. K리그를 보는 많은 축구팬들은 ACL을 일종의 국가 간의 경기, 리그 간의 자존심 대결로 보는 경향이 많다. K리그 팀이 J리그 팀을 상대로 승리하면 K리그의 수준이 J리그보다 높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리그 내에서는 치고 박고 싸워도 ACL 무대에서만큼은 K리그 팀들의 선전을 응원하는 글도 많이 보인다. 나는 사실 다른 K리그 팀들이 선전해도 별로 응원안한다. 북패라던가 매북이라던가...

 

이러한 경향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나는 ACL은 엄연한 클럽 경기이고, 굳이 이 대회에 국적을 투영할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굳이 따지자면 블루윙즈는 수원이라는 도시를 대표에서 ACL에 나가는 것이지,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리아스 前 포항 감독도 2009 ACL 결승전 사전 인터뷰에서 "국가에 대한 책임감은 대표팀이 지는 것이며, 나는 포항 팬을 위해서 우승컵을 들고 싶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밝혔는데, 내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인터뷰였다. 당장 유럽축구에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선전한다고 리버풀 팬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응원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축구팀이 발전한 '내 고장 팀'이라는 자부심이 깊게 박힌 유럽과 독재자의 필요에 의해 축구 리그가 시작한 우리나라를 일대일로 놓고 비교하는 것은 적절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경기 마케팅에서도 '리그 간의 자존심 대결'이라던가, '한국과 일본의 대결'이 관중 동원 면에서는 효과적일 것이다. 당장 '수원과 가시마의 대결!'보다는 '한국 챔피언과 일본 챔피언의 대결'이라는 문구가 훨씬 더 이목을 끌기에는 좋을테니까.

 

개막전 패배, 그리고 관중 동원이 힘든 평일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대륙 대회 경기여서 그런지 N석이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들어찼던 기억이 난다. 특히 상대팀이었던 가시마 앤틀러스가 J리그 2연속 챔피언이었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K리그와 J리그의 대결', '수원과 가시마의 한일전'이라는 타이틀로 이 경기를 집중 조명했다. 하지만 경기는 챔피언들의 맞대결인만큼 치열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블루윙즈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전반 44분에 리웨이펑이 문전 앞 혼전 상황에서 강력한 슈팅으로 선제골을 기록했고, 뒤이어 에두가 왼쪽에서 올라온 홍순학의 크로스를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하며 2-0 리드를 안고 전반을 끝냈다. 후반에도 홍순학과 박현범의 추가골로 4-1 승리를 거뒀다. 개막전의 신통치 않았던 경기력에 비해 시원시원한 경기력으로 리그 경기에 대한 우려를 어느 정도 벗겨낸 점이 고무적이었다. "리웨이펑 짜요!"라는 콜도 이 경기부터 나온 것으로 기억이 난다.

 

2009-2010시즌 차범근 감독 아래의 경기력을 생각해보면, 차붐의 블루윙즈가 보여준 다이렉트 축구는 이 때가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땐 그걸 몰랐고, 이 경기를 바탕으로 반전이 가능하겠구나 생각을 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