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버드의 기억/2008

081205 수원 블루윙즈 챔피언결정전 1차전(1)

Seori 서리 2023. 6. 8. 00:53

어떤 특정한 축구팀을 응원하게 된다는 것은 여러 계기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유럽처럼 '내가 이 도시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도시의 팀을 응원한다.'가 되겠지만, 그건 유럽 사람들에게 축구가 가지는 의미가 다르고, 또 그만큼 프로축구 역사가 길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로축구 역사가 길지도 않고, 또 사실 축구가 그 정도까지 삶에 깊이 있지도 않아서 아무래도 그 도시 태생이라 그 팀을 응원하다는 개념은 상대적으로 희박하다. 차라리 고교 야구의 명맥을 이은 프로 야구가 오히려 우리에겐 유럽 축구팀 같은 의미일 것이다.

 

2008년 즈음에 나는 한창 내가 응원할 '우리나라' 축구팀을 찾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서 축구를 본다는 것은 K리그보다는 해외축구를 의미했고, 나 역시 해외축구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 즈음 응원할 우리나라 축구팀을 찾은 것은 우연히 본 어떤 해외축구팀 팬의 글 때문이었다. 자기가 현지 팬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현지 팬이 "너희 나라에는 축구팀이 없어? 왜 이 팀을 응원하는 거지? 너희 나라 축구에 대해서 이야기 해줄래?"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대답을 할 수 없었고, 국내 축구에 관심이 없었던 본인은 한편으로 부끄러웠다는 글이었다. 되돌아보니 나도 그랬다. 물론 해당 글의 주인공처럼 국내 축구에 문외한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응원팀을 가지고 지켜볼만큼 애정있는 시선은 아니었다. 약간의 관심은 있지만 깊이있게 들여다보지는 않는, '수준이 떨어지는 K리그'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바로 나였다. 그래서 마침 내가 응원할만한 팀은 어디일까, 이러저리 재보고 있었던 것이 2008년이었다.

 

'어떤 팀을 응원해야지?'라는 고민이 생겼을 때 정했던 기준은 두 가지였다. 첫번째는 경기장이 가까워서 자주 보러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연고이전 등의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번째는 당연한 조건이었고, 두번째는 K리그에 관심이 크게 없었던 나이에도 그 때 벌어졌던 일들의 충격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상암에 있는 그 팀을 서울 지역의 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가 우연히 가져온 서울의 유니폼도 '이 팀은 서울팀 아니잖아요'라고 하며 옷장 구석에 쳐박아 두었었다. 태생부터 개랑이었다. 그게 중학생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랬기 때문에 남은 구단이 바로 수원 블루윙즈와 인천 유나이티드, 두 팀이었다.

 

단순히 경기장의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수원 블루윙즈를 응원팀으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든지 어렸을 때에는 주로 제일 잘하는 팀을 좋아하는 심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내가 한창 축구에 눈을 뜰 무렵, 그러니까 1999년, 해외에서 축구를 제일 잘하는 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트레블)였고, 국내에서 제일 축구를 잘하던 팀이 수원 블루윙즈(전관왕)였다. 그래서 가상의 축구팀, 축구 리그를 만들 때에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하는 팀은 항상 수원이라는 지명을 붙였다. 수원 블루윙즈를 응원팀으로 선택하게 된 것은 어렸을 때의 그런 기억이 한 30% 정도의 이유가 되었다.

 

물론 어린 시절의 관심만으로 블루윙즈를 응원 팀으로 고른 것은 아니었다. 한창 응원팀을 고르던 2008년, 만약 직관을 다른 팀으로 갔다면 지금쯤 나는 다른 팀의 서포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수원 서포터였던 학과 선배가 '표를 사주겠다'며 나를 경기장으로 끌고 갔고, 그렇게 끌려 간 경기는 무려 아직까지도 마지막 우승으로 남아있는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었다. 결국 난 이 경기로 입덕 부정기를 겪을 새도 없이 개랑덕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